저는 무엇이든지 웬만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배우고 느낄 점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쿠팡 물류센터 일용직도 가봤습니다. 사실은 옛날부터 한 번은 가보고 싶었는데 예전에는 학교 다니다 보니 인천에 있을 날이 많이 없었어서 안 가다가, 또 복무하면서는 못 가다가 서울라이프를 복귀하기 이전에 한번 가봤습니다.
인스타에서 어느 분이 갔다온 릴스를 보고 어케 신청하는지 파악했습니다. 쿠펀치라는 앱에서 신청한데요.
그래서 월요일 밤에 신청을 했습니다. 인천14센터 입고역할을. 근데 화요일 오후가 되어도 신청을 안 받아주는 거예요. 그래서 출고로 역할을 바꿔봤죠. 그랬더니 6시 넘어서 출근확정됐다고 연락이 옵니다. (아니 이렇게 늦게 알려줘도 되는 거냐고..)
카톡 메시지로 받은 공지사항을 읽어보고 버스 승차신청을 합니다. 쿠버스라는 앱에서 신청을 한대요.
버스 노선도 겁나 많아요. 인천 내(연수, 영종, 부평, 가정, 계양, 계산, 구월)는 물론 경기도(부천, 시흥, 안양, 안산, 김포, 군포, 광명, 일산)랑 서울(신도림, 신대방, 금천구, 강서구)까지 있습니다. 셔틀버스가 거의 20대는 되는 듯..!
암튼 그렇게 잘 버스를 예약을 하고, 시간에 맞추어 지식정보단지역 버스정류장으로 갔습니다. 무슨 QR확인 같은 것도 안 하고 걍 버스 와서 태우고 시간되면 출발함,,, 자리가 널널해서 다행이지 40명 넘게 타면 어쩔라고 그러나 몰라.

쿠팡 역할은 크게 5가지로 구분된답니다. [허브, 입고, 출고, 품질관리, 행정지원]
근데 사실 뒤에 2개는 뽑는 물류센터가 거의 없어서 앞에 3개만 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함.
허브는 제일 빡센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물류창고 일입니다. 상하차 같은 것인 듯. 그런만큼 일급도 비싸답니다. 약 100,000원
입고와 트럭에서 내린 물건을 창고에 넣어두는 것.
출고는 창고에서 고객이 주문한 물건을 꺼내서 박스에 담아서 포장하라고 내려보내는 것.
두 가지 업무는 일급이 조금 쌉니다. 약 98,000원 (근데 이 정도 차이면 난 걍 입고출고할래.. 저가커피 한 잔 먹자고 몸을 갈기는 싫어..)
여기서 사실 제가 왜 14센터를 지원했는지가 나오는데요. 셔틀버스가 집에서 제일 가깝기도 했고, 다른 센터는 8~17시 근무인데 여기는 8~18시 근무라 초과근무 1시간으로 평균시급이 조금 더 나옵니다. 전자는 (최저시급*시간 = 10320*8)이었음.
인터넷을 찾아보니 업무강도는 입고<출고<허브랍니다. 근데 잘못해서 허브에 인력 부족하면 다른 부서에서 끌려갈 수도 있고 그런가 봄. 다행히도 저는 하루종일 출고만 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하루의 일과를 읊어보죠.
안내에도 나와있긴 했지만 걍 버스에서 내리면 사람들 따라가면 됩니다. 8층에서 내리고 9층으로 올라감. 그러면 QR코드로 체크인할 수 있는 곳이 나오는데 그냥은 안되고 쿠팡 와이파이를 잡고 체크인을 하래요. 와이파이 잡았는데 느낌표 에러 떠서 물어보니 된거라고 걍 인증하라네요? 암튼 그렇게 인증하고 처음 온 사람이라 건강문진표 작성하고 맞은편에 교육장 가서 혈압재고 대기하고 있으면 8시부터 교육 시작합니다. 그날 처음 오신 분이 거의 20분은 되었음. 성별도 거의 5:5 남자가 6:4정도고 나잇대도 2030 젊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4050 어머니들도 있었음.
거의 2시간가량 교육을 하고 사물함에 짐 다 놓고, 안전화 갈아 신고, 전 7층으로 향했습니다. 거기서도 교육을 받습니다.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업무를 하는지 어떻게 수행하는지. 전 아예 처음 간 것이라 교육이 좀 더 디테일했습니다. 근데 그 과정에서 직원들의 기싸움을 볼 수 있었는데요!

교육을 하려고 선반들 사이를 지나가는데 그때 재고체크하고, 품질관리하는 분들이 그 줄에서 검수 작업을 하고 계셨음. 우리가 물건 하나 꺼내러 들어가면 직원포함 4명이 우르르 들어가서 설명 듣고 우르르 나오니까 당연히 업무에 방해가 되죠. 그래서 그걸 나 교육해 주는 분께 다른 데서 할 수 없겠냐고 말씀드렸는데 "네! 없어요" 였나? 하여튼 기존쎄 느낌으로 맞받아치심. 실제로도 어디가서 어느 물건 담으라는 것은 쿠팡앱 내의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할당되고 작업자가 임의로 거절할 수도 없어서 못 바꾸긴 합니다.
암튼 그렇게 교육이 끝나고 다른 친한 작업자들이랑 우리 조교랑 얘기하는 거 들어보니까 저 품질직원이 자기한테 뭐라고 했다고 이따가 오후에 들이받는다나 뭐라나~~
재밌는 곳입니다. ㅋㅎㅋㅎ
정규직원들도 업무가 과중하다보니(쿠팡의 주문량은 어마무시하기에 물류창고에서 아무리 열심히 물건을 뺀다고 해도 절대 끝이 나지 않습니다.) 다들 뭔가 친절하기보다는 cynical함.
그렇게 오전 내내 교육만 듣고 한두 바구니 채우니 끝. 예전에는 작업자 한 명이 한 바구니만 채우고 컨베이어벨트 태워서 내려보내고 다음 바구니 채웠다는데 쿠팡 인력이 부족해지니 이제 카트의 크기를 키워주고 한 명의 작업자가 최대 4개의 카트를 끌고 다닙니다. 으윽
점심시간입니다!! 물류창고가 워낙 넓어서(전체 8층짜리 창고에서 난 6층에서 일했지만 사실은 6-3층까지 있습니다. 6-3층이 그나마 가벼운 물건들이라 팔이 아프진 않음. 제일 무거웠던 게 마요네즈 3kg 4개! 정도, 그러나 하도 걸어 다녀서 다리랑 발이 아팠지. 안전화를 신기는데 깔창이 거의 없는 편이라 발바닥이 너무 아파요.. 바닥에 있는 물건 꺼내려고 자주 무릎 굽혀서 앉다보니 무릎도 아프고..) 방송으로 안내해주긴 하지만 일 집중하다보면 못 들을 수도 있고, 전반적으로 친절한 분위기가 아니라 눈치껏 남들 컨베이어벨트 막차 태우고 밥 먹으러 나가는 것 같으면 따라나갑니다. 식당이 어딘지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걍 흐름따라 파도따라 가는거지.
밥은 예상보다 맛있었습니다. 소방서에 비하면 당연히 부족하지만 고등학교 급식 수준?
한식-그날은 시래기 돼지고기 찜?이 메인요리였는데 자율배식이라 맘껏 가져가서 좋았음. 중식-그날은 고추잡채, 라면 中 택1 하고 매실차 자율!

냠냠하고 휴게실에서 아이스크림 슥 챙겨서 구석에 쳐박혀 앉아있는데 어떤 어르신이 슥 오십니다. 그래서 나한테 스몰톡을 거심.. 묘하게 사투리? 느낌도 나시고 하셔서 내가 잘 못 듣긴 했는데 걍 적당히 반응만 해드리고 얼른 도망쳐 나옴.. (요런 거 보면 확신의 I입니다. 다시 E가 되는 날이 올까?) 자꾸 아이스크림 많이 먹으래ㅋㅋㅋ 대충 아버지 뻘 같다고 말씀드리니 아버지 연세 물어보시더니 5살인가 더 많으시단다. (근데 우리 아빠보다 5살이 더 많으면 60살이 넘는데 그러면 여기서 일 못하시는데요?!?!)
암튼 그렇게 1시간 쉬고 12시 반에 다시 현장에 복귀했음. 근데 현장이 너무 이상하게 조용해. 내가 일찍 온 건가?! 하고 데스크 가서 여쭤보니 점심시간이 12:20까지라네? 10분 늦었으니 위에 가서 열심히 해달래요. 뭐 어쩌겠어~ㅋㅋㅋ 걍 늦은거지~~
위에 올라가 보니 다들 일하고 계십니다. 나도 본격적으로 카트 찾아서 업무 시작! 업무는 단순합니다. 카트에 바구니 올리고 바구니 바코드 찍고, 물건 찾으러 다니면서 물건 각각의 바구니에 담고, 바구니에 물건 많이 실렸거나(20개 이상), 무게가 많이 나가거나, 부피가 많이 찼거나 하면 바구니(토트) 마감하고 컨베이어벨트에 실어서 내려보내면 됩니다. 이걸 6.5시간 동안 무한 반복!
소감
무슨 타이쿤 깨는 것 같고 나름 재밌습니다. 약간 내가 담는 물건이 실제로 고객에게 가는 것 같고! 근데 점점 시간이 안 가... 물론 점점 담는 속도가 빨라진 것도 있겠지만! 그렇게 많은 물건을 담다 보니 손가락이 아픕니다. 토트 개시할 때 바코드 찍고, 위치 도착해서 선반 칸 바코드 찍고, 물건 바코드 찍고, 토트 마감할 때 바코드 찍고 거의 물건 1000개 넘게 날랐을 거니 2000번 이상 바코드를 누른 듯. (아침에 안전교육할 때는 인간공학적으로 무거운 거 어떻게 들라고 알려주는데 왜 이건 안 알려주냐...)
또 업무를 수행하면서 든 생각은 쿠팡의 업무가 상당히 비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물류트럭에서 배송이 오면 거의 몇백 개씩 올 테니까 한 곳에 다 못 저장합니다. 내가 물건을 꺼내는 선반의 칸은 거의 책꽂이 한 칸 정도의 사이즈라 물건이 많이 안 들어감. 그러다 보니 하나의 물품을 여기저기에 나눠서 저장합니다. 그나마 그 쪼갠 위치들이 가까우면 모르겠는데 앞에 선반, 맞은편 선반, 한 줄 뒤 등등 제각각입니다.
즉 좌표로 정리된 수많은 버퍼를 생성해 두고 그냥 물건 들어오면 그때그때 가능한 버퍼에다가 물건 쌓아두고 알아서 빼서 써라는 식입니다.
그리고 들어온 주문을 건 바이 건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로켓배송해야 하는 물품들은 곧바로 작업자 할당해서 토트에 담는 것이고, 아닌 물품은 당일에만 담는 방식입니다. 그러니 하나의 주문을 하루에 다 합쳐서 "총 73개 담아라!" 라고 작업자에게 명령을 내리면 예쁜데 그걸 몇 번에 쪼개서 합니다. (그래서 휴대용 선풍기만 한 토트에 10 몇 개씩 해서 한 50~100개는 담은 듯...) 또한 이렇게 쪼개놓고도 한 곳에서 선풍기를 다 안 챙겨놓고 다른 곳 가서 다시 선풍기를 챙기랍니다. 이 무슨 귀찮은 일이야. 좀 담을 물건을 할당시키는 알고리즘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 또한 통로의 간격이 꽤나 좁습니다. 즉 카트 하나 집어넣어 두면 옆으로 사람 한 명밖에 못 걸어 다니고 카트 2대는 못 다님. 그러니 두대의 카트가 통로에서 만나면 재앙입니다. 작업자 간 동선도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이런 거 피하게 안 만들어주고 걍 지나가라고 하면 아주 맘에 안 듭니다.

뇌 빼고 할 일만 하면 되고, 다른 사람들이랑 마주할 일 없어서 좋고, 그래서 약간 인생의 현타가 와서 생각의 시간이 필요하거나 템플스테이 갬성으로 속세에서 하루 벗어나고 싶다면 가봐도 좋을 듯합니다.
근데 내가 돈을 벌고 싶어서 간다면 비추. 하루정도 경험해 보기에는 유익했습니다.
음악도 안 틀어주고, 전자기기 반입 금지기에 되게 지루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친구랑 같이 갔으면 좀 더 나았을수도
비록 돈의 소중함, 돈의 가치 이런 걸 알았다기보다는 산경공이 해야 할 일이 많겠구나.
쿠팡도 그저 얼레벌레 위에 계속 stack 해버리는 식으로 업무를 수행하는구나. 물건 적재 알고리즘이나 피킹 알고리즘을 좀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겠구나. 정도의 교훈을 얻은 것 같네요.

일이 끝나고
몇 시까지 일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6시까지 칼같이 채워야 하는지 50분 되면 슬 정리하면 되는지 등. 그래서 저는 걍 50분에 마무리치고 내려갔는데 이게 아마 늦은 것 같습니다. 마무리하고 나니 야간조 사람들 출근하셔서 대기하고 있기에 과연 나는 기다려야 하는지 집에 가도 되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직원한테 물어봐야 하는데 말했다시피 직원이 냉소적이라 별로 말 걸고 싶지 않음... 암튼 내려가보니 벌써 직원 휴게실 쪽에 짐 챙기는 사람들 많더라. 제가 늦은 거죠.
아이스크림 하나 또 먹고(총 3개 먹음 냠) 자판기에서 500원 음료수 하나 뽑고 퇴근 버스 탔습니다. 6시 20분 출발! 6시 50분쯤에 버스 내려서 퇴근했네요~
요즘도 계속 일용직 출근하라고 문자오는데 "응 안가~"
이상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