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讀後感)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문상훈) 을 다시 읽고.

채승민 2025. 11. 7. 22:54

책이 짧은 것을 나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가격은 두꺼운 책과 똑같이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이 가볍다는 것은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삶의 조금의 여유라도 생겼을 때 편하게 읽어볼 수 있다는 장점이라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가을이 끝나가는 나날을 붙잡고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다시 읽으니 새로이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고, 아직까지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이 책은 문상훈의 자서전 같아요. 본인의 아팠던 기억들과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새벽감성으로 잘 정제하여 표현한 150쪽이거든요. 그래서 빠다너스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 같고, 당연히 나와는 비슷한 모습보다 다른 모습이 많을 것이기에 어떤 점이 다른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는 새벽 감성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합니다. 새벽의 사색에서 나오는 생각은 좋아하지만 그 사색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은 싫어합니다. 그가 고찰해 낸 하나의 생각으로 다음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은 꿈의 크기와 미련의 크기가 역전되어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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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행복한 감정은 늘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에 잠기고 후회를 하는거겠죠. 즉 미련이 있어야 행복의 가치를 알 수 있는거 같아요. 

 

엔트로피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듯이 우리의 기억은 좋건 나쁘건 증가합니다. 나쁜 기억도 미화된 기억으로 존재합니다. 기억의 쌍무성을 통하여 팩트체크를 한다면 정확하게 남겠지만 빠다너스는 굳이 본인의 기억을 타인이랑 확인해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즉 기억의 편무성을 이용한다면 미화된 채로 남겨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내가 드는 한 가지 생각은, 미련과 행복이 모두 있어서 up and down 의 peak가 높은 생활과, 그냥 아예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고 peak가 낮은 monotone한 생활 중 뭐가 더 만족스러울까입니다.

 

근데 사실 저는 흐물텅하게 사는 것을 싫어합니다. 최근에 봤던 <청담국제고등학교>의 이사장 할머니가 입양손주를 키우면서도 이 아이는 자기 아들과 다르게 흐물텅하지 않아서 좋다고 합니다. 이 내용이 되게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됐었죠. 사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어요. 기왕 한 번 사는 인생, 잘 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대다수의 일들에 열심히 임했고, 이는 대체적으로 좋은 결과들을 야기했죠. 그렇게 운이 좋게도 저의 인생이 흘러왔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운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이 없어요. 이 운이라는 변수를 상수로 만드는 것이 이제 20대 중반의 내가 노력해야할 일이겠죠. 

 

그치만 두 문단 위에 저 고민은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흐물텅하게 사는 것을 좋게 생각하기 때문이죠. 인간의 이중성입니다. 주어진 matter에 따라 나의 사고방식을 바꿉니다. 이는 일종의 자기합리화로 '나의 방식은 틀리지 않아!' 라는 생각을 강조하여 인지부조화를 억제시킵니다. 

 

인간의 이중성 역시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가면(다른 자아)을 쓰고 살아요. 가족관계에서의 나와, 친구관계에서의 나와, 연인관계에서의 나의 모습은 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본질적으로 세가지 모습이 합쳐져서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것이겠지만요. 

 

그래서 지금 글을 작성하면서 드는 생각은 나의 이중성을 어디까지 용인할지 입니다. 이중성을 아예 인정하지 않으면 너무 고리타분한 사람이 되거나 정신적인 고통에서 허덕일 것 같고, 이중성을 너무 인정한다면 표리부동한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수준의 optimal point를 찾아야 하는데 얘는 수치화되지 않아서 최적화를 시키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은 아마도 못 구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나이를 더 많이 먹고, 어느 책에서나 어느 미디어에서 구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새벽감성으로 사고의 흐름이 지속되면 항상 내가 내리는 결론은 모르겠다입니다. 물론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은 새벽이 아니긴 합니다. 따라서 이런 애매한 결론을 회피하고 싶어서 즉 새벽의 사색이 두려워서 일찍자는 생활패턴을 가지게 된 것 같기도 해요.

 

나도 집 소방서를 와리가리하다보니 내성적이 되고 있는데 이런 성격은 몸속에서 바이러스가 곪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그러나 나는 요즘 사회활동은 많이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에 대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할때도 있는데 이에 대해 더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책까지 낸 빠다너스를 보니 반면교사로 그래도 난 잘 살고있지 않나 싶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 몇 개만 쓰고 마무리할게요.


행복에 대한 맹목적인 태도를 갖지 않는것이 좋겠다. 이제 나는 그 누구의 행복도 바라지 않는다.
모든 고민이 그렇듯 어떻게든 되겠지.
사랑에는 거리조절이 중요하다.
혼자하는 사랑을 해봐야, 잘 해봐야 서로 하는 사랑도 잘 할 수 있다.

 

한 번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다는 행위가 내 인생에 있어서 상당히 rare한 경험이었는데 꽤나 재밌고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서른에 알게 된 사실을 난 지금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있고, 지금의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텍스트는 서른의 내가, 마흔의 내가 이해할 수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앞으로 매년 단풍이 들때는 그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한번 읽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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